언젠가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왜 이토록 나는 내 안에 빈 곳을 채우지 못해 안달일까, 하고. 그리고 어디선가 읽은 글귀를 가져와 내 심정을 대변했었지. 그 글귀 주인공 역시 텅 빈 자신 한가운데를 어떻게든 채우고자 발버둥 치며 살아왔지만 도무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 하더라. 그러다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친 것이, 그 자는 빵집 아들이었는데 그래서 그의 삶은 도넛이라 인정하기로 했다고. 가운데가 뻥 뚫린 것이 그저 그가 가지고 태어난 삶의 형태라고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오? 그래? 비록 난 빵집 딸은 아니지만 나도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며 위로 비슷한 걸 받고 싶었던 듯하다. 근데 이제와 생각하니···그게 맞나? 인간이 왜 도넛이야? 도넛은 도넛이고 인간은 인간이지. 하긴. 인간이 온전한 동그란 빵 모양이라는 곤 누가 정했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웃기는 군.
너는 한동안 공허했다고 했다. 그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고 도대체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 헛헛함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 건지 누군가 속 시원히 말해줬으면 했다. 만약 누군가 나의 빈 곳을 온전히 채우고 나 또한 누군가의 빈 곳을 오롯이 채워 너와 내가 완성형(?) 도넛이 된다면 그건 말이 되는 걸까? 인간은 본래 그 자체로 온전해야 함이 옳은 게 아닐까? 아닌가? 온전치 못하니 인간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완전해지지 못해 안달인 거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 라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읽고 있다. 남주는 참으로 복잡하고 하여간 정신 나간 작자다, 나 만큼이나. 책을 3분의 1쯤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란,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방향이라 보았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나의 빈 곳을 채운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씀. 어쨌든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너, 어쩌면 너, 그쪽도 아니면 이쪽을 찾고 찾고 또 찾아 헤매며 내 빈 곳을 채워줄 '소' 내지는 '패티(patty)' 것도 아니라면 '도우(dough)'라도 붙잡고 늘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완성하기 위한 이기적인 발걸음일 뿐인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서 부모에게 채 받지 못한 사랑을 갈구했다. 그리고 당신은 기꺼이 내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부모가 되었고 나를 자식처럼 보듬었다. 그 어떤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유일한 휴식을 취했노라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이제 와 보니 당신도, 나도 우리가 진정 원하고 바랐던 사랑은 그게 아니었다. 그건 성숙한 사랑도, 진정한 사랑도 아니었음을 이제는 당신도 나도 안다. 그러한 형태의 사랑은 단지, 당신과 내가 서로를 채우고 각자를 온전한 인간으로 완성하기 위한 이기적인 눈속임이었을 뿐임을 이제는 다 안다.
그렇다 한들 지나간 시간이 의미 없지는 않다. 뒤돌아보게 하고 반성케 한다. 그래서 또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그 곳에서 네게 받은 사랑의 크기와 의미와 진정성을 곱씹으며 너라는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너 또한 어려운 일을 했고 나 또한 이렇게 깨닫는 걸 보면 그리 멍청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가. 누구를? 나를 위해서? 나를 채우기 위해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 가? 그렇다면 나를 온전히 채울 그 누군가는 어디에 있는가? 너는 여전히 아닌 가? 어제와 다른 오늘의 너 인가, 아님 내일의 너 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를 채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라 하였거늘 또다시 흐린 눈 하는 가? 쯧.
속이 쓰린 밤이다. 너를 잃을 것만 같아서 인지. 아님 이미 잃어서 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오늘도 이렇게 나약한 내가 끔찍해서인지. 물음표.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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